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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일상다반사

태국 봉사활동 2020.1.29~2020.2.15

by 시즈코 2020.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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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벌써 두달이나 지난 태국 봉사활동 이야기

 

 

태국에 가게된건 봉사를 통해 뿌듯함과 따듯함을 느끼고 싶다! 거나 나 스스로의 성장과 배움을 얻는 발판으로 삼겠다!

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지원을 하게된건 아니었다.

 

나는 4학년이고 학교를 다닐 기회는 이제 얼마 안남았고 전공 특성상 2020년 여름방학은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마지막 방학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뭐 없을까? 해서 참가하게 되었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참가 기간을 놓쳐버렸고 해외봉사프로그램은 자기부담금이 부담이 되어서 신청을 못하고 있다가

계속되는 추가모집공고에 '나 보라고 추가모집 공고가 계속 올라오는건가?'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부모님께 말씀드려 돈을 마련해 가게 되었다

(면접볼 때 왜 추가모집에 신청을 했느냐는 질문에 자기부담금이 부담되어서 못하고 있다가 추가모집 공고가 계속 올라오자 아 왠지 나보고 가라고 계속 올라오는 것 같아서 돈 마련해서 신청하게 되었다고 하니깐 면접보신 단장님과 팀장님이 이런 답변 오랜만이라며 웃으셨다)

 

나는 태국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팀에 포함되어 태국봉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

 

봉사는 '노력봉사' 와 '교육봉사'로 나눠졌는데 교육봉사가 이 봉사 프로그램의 메인이고 나는 추가모집으로 출국 1달전에 팀에 들어와서 팀원들과 함께 한글 교과서 수업  ppt 아이들과 함께 부를 노래와 율동연습에 들어갔다.

 

방학중 매일 12시부터 6시까지 거기다 혹시나 부족한게 있으면 야근까지 남아서 하기도 하니 다른 활동을 하기 힘들었고 서류를 붙은 대외활동 면접에 못가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괜히 신청했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한글은 매일 하는 말인데 가르치려고 하니 왜 이렇게 어려운건지 한국인인 나 조차도 이게 왜 이런지 이유를 모르겠는 문법들도 있었고 무엇을 먼저 가르쳐줘야 편할까 이건 너무 어렵지 않을까? 너무 쉽지 않을까? 고민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성격상 빨리빨리하고 사소한건 대충 넘어가야하는데 교과서를 작업하다보면 그게 그렇게 안되는 일도 많았다.

 

매일매일 학교가는것도 피곤하고 책 작업도 피곤하고 디자인과라 맡게된 다른 작업도 피곤하고 짜증은 우리가 만든 교과서를 받아보니깐 또 뿌듯하긴 했다

 

팀원들과 매일 회의하면서 수정하고 검토하고 수정하고 검토를 반복하는 와중에 이런건 그냥 넘어가도 될것같은데? 싶었던 부분들도 세세하게 짚어내던게 교과서를 완성하고 보니깐 눈에 보여서 출발 전부터 배워가는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월 말 그 당시에는 코로나가 지금처럼 퍼지지 않았지만 태국 현지는 우리보다 상황이 안좋았던 터라 출발 직전에 포기한 다른 팀원들도 있어서 안타까웠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태국에 가게되었다.

 

정말 두근 거렸다

 

사실 좋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나쁜 두근거림이었다(나는). 첫 수업이 너무 무섭고 떨려서 우리팀은 가는 길 내내 회의를 했다.

첫날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이며 어떤 말을 해야하며... 방콕 공항에서 내려서 촌부리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까지도 책을 들고 멀미하면서 회의를 했다.

학교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태국에 넘어오자 새벽이었는데 쉬지도 못하고 짐 정리하고 있으니 몸도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다음날 학교에서 댄스팀이나 태권도팀은 공연을 하며 봉사의 첫 시작을 알렸다.

나는 갑자기 장을 보게 되어서 첫 수업의 시작을 같이 하진 못했지만 장을 보고 난 후 수업에 합류했고...

그 분위기를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썰렁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너무 긴장을 해서 활동시간 내에서는 피곤한줄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업에도 패턴이 생기고 점점 원활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작고 낯가리고 말 수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나는 내 담당 수업마다 힘들긴 했지만, 같이 수업하는 팀원들이 항상 도와줘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애들한텐 너무 미안했다... 국제학교 아이들이라 그런지 영어도 다들 잘했고 수업도 항상 잘 따라와줬다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초반에는 마이크를 써야하나 고민도 했는데 그냥 내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 지르기로 했다

하지만 여러 친구들이 안들렸다고 한다...

 

벽화를 그리거나 건강계단 시트지를 붙이는 작업을 할때는 말 그대로 그냥 몸을 쓰는 노동을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수업을 좋아했지만 나는 이 노동시간이 오히려 더 좋았다. 땀 흘리고 일하다보면 크게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텅 빈 머리로 작업하는게 좋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보니 우리 팀 외의 분들과 친해지지는 못했는데... 너무 아쉽다. 봉사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많은데 결국 우리 팀원 외의 사람들과는 별로 못친해지고 한국에 돌아와버렸다.

다시 시간을 돌려 돌아간다면... 그래도 못친해졌을 것 같다. 부끄럼쟁이에게 2주는 너무 짧다.

 

결과발표 2일 전 수업시간에 애들을 뒤에 무대대형으로 새워서 다 같이 노래와 율동을 했다. 항상 앞에 자막을 달아주다가 화면을 안띄우고 노래를 시켜봤다.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애들이 잘 불러주는게 너무 감동스러워서 혼자 슬쩍 울었다. 안들켰다.

첫날에는 그렇게 차가워보이는 애들이 언니 언니 하며 불러주는게 너무 귀엽고 또 미안했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미안하다는 마음이 커지더라

수업을 다 끝마치고 결과발표날 아이들이 무대에 서고 우리는 밑에서 보조를 하며 노래를 했다. 끝이 나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슬프지는 않았다. 후련한 마음도 아니였고 그냥 끝이라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다음날도 6시에 일어나 체조를 할 것 같았고 한국어 교실에서 수업을 할 것 같았고 그냥 그 시간이 끝일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이 써준 롤링페이퍼에는

'당신은 조용한 사람입니다'

'you so speechless'

'you so quiet'

같은게 써져있었다. 내가 너무 못해준 것 같아서 집에 오니깐 눈물이 나더라

 

봉사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하는건데 내가 얼마나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왜 다들 다녀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해주는지 알겠다.

다녀온것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내가 갔으면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은 있다.

 

요즘도 간혹 연락을 주고받는데 숫기 없는 사람이라 언니가 미안해ㅠㅠ 노력은 하는데 재미가 없는지 대화가 안이어지네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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